간단한 감상

김유정과 이상, 백석과 허준

우물. 2009. 8. 21. 16:36

그 이상은 없다

오명근 지음 / 상상공방(동양문고)
나의 점수 :





그 이상은 없다 읽을 것
...
개화기-광복이후 문학 찾아보고 공부할 것
혼란한 시대의 가련한 문학인
이상의 김유정론
해방된 이후 백석의 시는 허준이 발표한 것
결벽증 환자 백석이지만 정작 친우 허준은 지저분하기 그지 없었다고.
이상이 김유정에게 정사情死(같이 죽는 것)를 권함...
이상·김유정 "같이 죽자" "싫다" 육두문자로 싸웠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정지용)

“거참, 지겨워서 못 듣겠구먼. 형님, 자기 것 말고, 내 시도 한 번 낭독해 주시오.”(이상)

“잘 한다. 그래 싸워라. 누가 이기나 시합하자.”(이태준)

전기와 사사(社史) 전문 작가인 오명근(40)씨의 소설, ‘그 이상은 없다’(동양문고)가 상상한 1930년대 어느 날 소설가 상허 이태준의 고택, ‘수연산방’ 풍경이다. ‘수연산방’은 구인회와 ‘문장’의 동인들이 모여 놀았던 문인들의 사랑방. 오씨는 문단의 기록들을 토대 삼아 당대의 독설가로 유명했던 시인 정지용과 이상의 말싸움을 재연했다.

‘그 이상은 없다’는 김기진, 김용준, 김유정, 노천명, 모윤숙, 박태원, 백석, 이상, 이태준, 임화, 정지용, 최정희 등 일제하 우리나라 근·현대문학의 꽃을 피워낸 문인들의 일상과 연애담 등을 소설 형식으로 재구성한 팩션(faction). 오씨는 “김윤식의 ‘이상 연구’, 김기진 자서전 ‘나의 회고록’, 임헌영의 ‘편지로 본 1940년대 문단비사’ 등 당시 문단사를 기록한 70여권의 책을 참고했다”고 말했다.



요절한 시인 이상(사진 왼쪽)이 쓴 소설 ‘실화’에 결핵으로 죽음을 앞둔 그가 자신과 같은 처지의 김유정(오른쪽)에게 “유정만 싫지 않다면 나는 오늘 밤 안으로 치러버리고 말 작정이었다”며 동반자살을 권유하는 장면이 나온다. 반면 유정은 “명일의 희망이 이글이글 끓습니다”며 ‘젊잖게’ 거절한다. 하지만 오씨의 소설에서는 육두문자를 써가며 서로를 비난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오씨는 “두 요절 문인의 갈등이 이상의 소설에 묘사된 것처럼 고상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오씨는 시인 백석이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서 언급한 연인 나타샤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백석과 가상 인터뷰도 갖는다. 오씨는 “2001년 9월 최정희 가족이 ‘문학사상’에 공개한 백석의 편지, 1936년 백석이 조선일보에 발표한 글, 생전에 그의 연인 자야로 알려졌던 대원각 주인 김영한이 남긴 증언 등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창작”이라고 말했다.

정지용·이태준 등 구인회 인맥을 이용해 ‘조선중앙일보’에 오감도를 연재하고 문명을 얻는데 성공한 이상의 전략, 그의 미망인 변동림이었다가 김환기의 아내가 된 김향안의 인생역정, 일본 유학후 카프(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를 장악하기 위해 박영희를 배신한 임화 등이 옴니버스 소설처럼 이어진다. 노천명·모윤숙·최정희가 신세대를 대표하는 1930년대 모던 걸(modern girl)의 전형으로 그려지고, ‘목마와 숙녀’의 시인 박인환은 이름을 남길 수 있다면 요절도 감수하겠다며 시인 김수영에게 죽는 방법을 물어보는 것으로 묘사된다.

소설은 이처럼 당대의 문인들을 선각자가 아닌 명예욕과 애욕에 물든 인간으로 그리고 있다. 오씨는 “상당수 문인이 병으로 요절하거나 남북분단 상황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았던 극적인 시기여서 인간적 측면을 강조했다”며 “이야기 끝에 ‘각주로 읽는 팩트와 픽션’이란 코너를 두어 실제 기록과 소설 속 허구를 비교했다”고 말했다.
(김태훈기자 [블로그 바로가기 scoop87.chosun.com])








소설체로 쓴 김유정론

김유정


(소설체로 쓴 김유정론)







암만해도 성을 안 낼 뿐만 아니라 누구를 대할 때든지 늘 좋은 낯으로 해야 쓰느니 하는 타입의 우수한 견본이 김○림이라. ※ 김기림(金起林)


좋은 낯을 하기는 해도 적이 비례(非禮)를 했다거나 끔찍이 못난 소리를 했다거나 하면 잠자코 속으로만 꿀꺽 업신여기고 그만두는 그러기 때문에 근시 안경을 쓴 위험 인물이 박○원이다. ※ 박태원(朴泰遠)


업신여겨야 할 경우에 "이놈! 네까진 놈이 뭘 아느냐" 라든가, 성을 내면 "여! 어디 덤벼 봐라"쯤 할 줄 아는, 하되, 그저 그럴 줄 알다 뿐이지 그만큼 해 두고 주저앉는 파에, 그만 이유로 코 밑에 수염을 저축한 정○용이 있다. ※ 정지용(鄭芝溶)


모자를 홱 벗어던지고 두루마기도 마고자도 민첩하게 턱 벗어던지고 두 팔 훌떡 부르걷고 주먹으로는 적의 볼따구니를, 발길로는 적의 사타구니를 격파하고도 오히려 행유 여력(行有餘力)에 엉덩방아를 찧고야 그치는 희유(稀有)의 투사가 있으니 김유정이다.


누구든지 속지 말라. 이 시인 가운데 쌍벽과 소설가 중 쌍벽은 약속하고 분만된 듯이 교만하다. 이들이 무슨 경우에 어떤 얼굴을 했댔자 기실은 그 교만에서 산출된 표정의 디포메이션 외의 아무 것도 아니니까. 참 위험하기 짝이 없는 분들이라는 것이다. 이 분들을 설복할 아무런 학설도 이 천하에는 없다. 이렇게들 또 고집이 세다.


나는 자고로 이렇게 교만하고 고집센 예술가를 좋아한다. 큰 예술가는 그저 누구보다도 교만해야 한다는 내 지론이다.


다행히 이 네 분은 서로들 친하다. 서로 친한 이분들과 친한 나 불초 이상이 보니까 여상(如上)의 성격의 순차적 차이가 있는 것은 재미있다. 이것은 혹 불행히 나 혼자의 재미에 그칠는지 우려되지만 그래도 좀 재미있어야 되겠다.


작품 이외의 이분들의 일은 적확히 묘파해서 써내 비교 교우학을 결정적으로 여실히 하겠다는 비장한 복안이어늘, 소설을 쓸 작정이다. 네 분을 각각 주인으로 하는 네 편의 소설이다.


그런데 족보에 없는 비평가 김문집(金文輯) 선생이 내 소설에 59점이라는 좀 참담한 채점을 해 놓셨다. 59점이면 낙제다. 한끝만 더 했더면, 그러니까 서울말로 <낙제 첫찌>다. "나는 참 낙담했습니다. 다시는 소설을 안 쓸 작정입니다"는 즉 거짓말이고, 이 경우에 내 어줍잖은 글이 네 분의 심사를 건드린다거나 읽는 이들의 조소를 산다거나 하지나 않을까 생각을 하니 아닌게아니라 등어리가 꽤 서늘하다. ※ 김문집 : 백철(白喆)과 더불어 대표적 친일 평론가.


그렇거든 59점짜리가 그럼 그렇지 하고 그저 눌러덮어 주어야겠고 뜻밖에 제법 되었거든 네 분이 선봉을 서서 김문집 선생께 좀 잘 좀 말해 주셔서 부디 급제를 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 김유정 편





이 유정은 겨울이면 모자를 쓰지 않는다. 그러면 탈모인가? 그의 그 더벅머리 위에는 참 우굴쭈굴한 벙거지가 얹혀 있는 것이다. 나는 걸핏하면


"김형! 그 김형이 쓰신 모자는 모자가 아닙니다."


"김형! (이 김형이라는 호칭인즉은 이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거 어떡하시는 말씀입니까."


"거 벙거지, 벙거지지요."


"벙거지! 벙거지! 옳습니다."


○원(遠)도 ○남(南)도 유정의 모자 자격을 인정하지 않는다. 벙거지라고밖에! ※ 안회남(安懷南)


엔간해서 술이 잘 안 취하는데 취하기만 하면 딴 사람이 되고 만다. 그것은 무엇을 보고 아느냐 하면 ―


보통으로 주먹을 쥐고 쓱 둘째손가락만 쭉 펴면 사람 가리키는 신호가 되는데 이래 가지고는 그 벙거지 차양 밑을 우벼파면서 나사못 박는 흉내를 내는 것이다. 하릴없이 젖먹이 곤지곤지 형용에 틀림없다.







창문사(彰文社)에서 내가 집무랍시고 하는 중에 떠억 나를 찾아온다. 와서는 내 집무 책상 앞에 마주앉는다. 앉아서는 바위덩어리처럼 말이 없다. 낸들 또 무슨 그리 신통한 이야기가 있으리요. 그저 서로 벙벙히 앉았는 동안에 나는 나대로 교정 등속 일을 한다. 가지가지 부호를 써서 내가 교정을 보고 있노라면 그는 불쑥


"김형! 거 지금 그 표는 어떡하라는 표구요."


이런다. 그럼 나는 기가 막혀서



"이거요, 글자가 곤두섰으니 바루 놓으란 표지요."


하고 나서는 또 그만이다. 이렇게 평소의 유정은 뚱보다. 이런 양반이 그 곤지곤지만 시작되면 통성(通姓) 다시 해야 한다.







그날 나도 초저녁에 술을 좀 먹고 곤해서 한참 자는데 별안간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한 시나 가까웠는데 하고 눈을 비비고 나가 보니까 유정이 B군과 S군과 작반(作伴)해 와서 이 야단이 아닌가. 유정은 연해 성히 곤지곤지 중이다. 나는 일견에


"익키! 이건 곤지곤지구나."


하고 내심 벌써 각오한 바가 있자니까 나가잔다.


"김형! 오늘 이 유정이가 오늘 술, 좀, 먹었읍니다. 김형! 우리 또 한잔 하십시다."


"아따 그러십시다그려."


이래서 나도 내 벙거지를 쓰고 나섰다.


나는 단박에 취해 버려서 역시 그 비장의 가요를 기탄없이 내뿜은가 싶다. 이렇게 밤이 늦었는데 가무음곡으로써 가구(街衢)를 소란케 하는 것은 법규상 안 된다. 그래 주파(酒婆)가 이러니 저러니 좀 했더니 S군과 B군은 불온하기 짝이 없는 언어로 주파를 탄압하면, 유정은 주파를 의미깊게 흘깃, 한 번 흘겨보더니


"김형! 우리 소리 합시다."



하고 그 척척 붙어올라올 것 같은 끈적끈적한 목소리로 강원도 아리랑 팔만구암자를 내뽑는다. 이 유정의 강원도 아리랑은 바야흐로 천하 일품의 경지다.


나는 소독 젓가락으로 추탕 보시깃전을 갈기면서 장단을 맞춰 좋아하는데 가만히 보니까 한쪽에서 S군과 B군이 불화다. 취중 문학담이 자연 아마 그리된 모양인데 부전부전하게 유정이 또 거기 가 한몫 끼이는 것이다. 나는 술들이나 먹지 저 왜들 저러누, 하고 서서 보고만 있으니까 유정이 예의 그 벙거지를 떡 벗어던지더니 두루마기 마고자 저고리를 차례로 벗어던지고는 S군과 맞달라붙는 것이 아닌가.


싸움의 테마는 아마 춘원의 문학적 가치 운운이던 모양인데 어쨌든 피차 어지간히들 취중이라 문학은 저리 집어치우고 이제 문제는 체력이다. 뺨도 치고 제법 태껸들도 한다. B군은 이리 비실 저리 비실 하면서 유정의 착의일식(着衣一式)을 주워 들고 바로 뜯어말린답시고 한가운데 가 끼여서 꾸기적꾸기적하는데 가는 발길 오는 발길에 이래저래 피해가 많은 꼴이다.


놀란 것은 주파와 나다.


주파는 술은 더 못 팔아도 좋으니 이분들을 좀 밖으로 모셔 내라는 애원이다. 나는 S군과 협력해서 가까스로 용사들을 밖으로 끌고 나오기는 나왔으나 이번에는 자동차가 줄지어 왕래하는 대로 한복판에서들 활약이다. 구경꾼이 금시로 모여든다. 용사들의 사기는 백열화(白熱化)한다.


나는 섣불리 좀 뜯어말리는 체하다가 얼떨결에 벙거지 벗어진 것이 당장 용사들의 군용화에 유린(蹂躪)을 당하고 말았다. 그만 나는 어이가 없어서 전선주에 가 기대서서 이 만화를 서서히 감상하자니까―


B군은 이건 또 언제 어디서 획득했는지 모를 5홉들이 술병을 거꾸로 쥐고 육모방망이 내휘두르듯 하면서 중재중인데 여전히 피해가 많다. B군은 이윽고 그 술병을 한 번 허공에 한층 높이 내휘두르더니 그 우렁찬 목소리로 산명 곡응(山鳴谷應)하라고 최후의 대갈일성을 시험해도 전황은 여전하다.


B군은 그만 화가 벌컥 난 모양이다. 그 술병을 지면 위에다 내던지고 가로되




"네놈들을 내 한꺼번에 죽이겠다."


고 결의의 빛을 표시하더니 좌충 우돌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S군, 유정의 분간이 없이 막 구타하기 시작이다.


이 광경을 본 나도 놀랐거니와 더욱 놀란 것은 전사 두 사람이다. 여태껏 싸움 말리는 역할을 하노라고 하던 B군이 별안간 이처럼 태도를 표변하니 교전하던 양인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B군은 우선 유정의 턱 밑을 주먹으로 공격했다. 경악한 유정은 방어의 자세를 취하면서 한쪽으로 비키니까 B군은 이번에는 S군을 걷어찼다. S군은 눈이 뚱그래서 이 역 한켠으로 비키면서 이건 또 무슨 생각으로


"너 유정이! 덤벼라."


"오냐! S! 너! 나한테 좀 맞아 봐라."


하면서 원래의 적이 다시금 달라붙으니까 B군은 그냥 두 사람을 얼러서 걷어차면서 주먹비를 내리는 것이다. 두 사람은 일제히 공세를 B군에게로 모아 가지고 쉽사리 B군을 격퇴한 다음 이어 본전(本戰)을 계속 중에 B군은 이번에는 S군의 불두덩을 걷어찼다. 노발대발한 S군은 B군을 향하여 맹렬한 일축(一蹴)을 수행하니까 이 틈을 타서 유정은 S군에게 이 또한 그만 못지않는 일축을 결행한다. 이러면 B군은 또 선수를 돌려 유정을 겨누어 거룩한 일축을 발사한다. 유정은 S군을, S군은 B군을, B군은 유정을, 유정은 S군을, S군은―


이것은 그냥 상상만으로도 족히 포복 절도할 절경임에 틀림없다. 나는 그만 내 벙거지가 여지없이 파멸한 것은 활연히 잊어버리고 웃음보가 곧 터질 지경인 것을 억지로 참고 있자니까 사람은 점점 꼬여드는데 이 진무류(珍無類)의 혼전은 언제나 끝날는지 자못 묘연하다.


이때 옆골목으로부터 순행하던 경관이 칼소리를 내면서 나왔다. 나와서 가만히 보니까 이건 싸움은 싸움인 모양인데 대체 누가 누구하고 싸우는 것인지 종을 잡을 수가 없는 것이다.


경관도 기가 막혀서




"이게 날이 너무 춥더니 실진(失眞)들을 한 게로군."


하는 모양으로 뒷짐을 지고 서서 한참이나 원망(遠望)한 끝에 대갈 일성(大喝一聲)


"가에렛(돌아가)!"


나는 이 추운 날 유치장에를 들어갔다가는 큰일이겠으므로


"곧 집으로 데리고 가겠습니다. 용서하십쇼. 술들이 몹시 취해 그렇습니다."


고 고두 백배(叩頭百拜)한 것이다.


경관의 두 번째 가에렛 소리에 겨우 이 삼국지는 아마 종색하였던가 한다.


이 이야기를 듣고 ○원(遠)이 "거 횡광이일(橫光利一)이 기계 같소그려" 하였다. (물론 이 세 친구는 그 이튿날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계속하여 정다왔다)






유정은 폐가 거의 결단이 나다시피 못쓰게 되었다. 그가 웃통 벗은 것을 보았는데 기구한 수신(瘦身)이 나와 비슷하다. 늘,


"김형이 그저 두 달만 약주를 끊었으면 건강해질 텐데."


해도 막무가내하(莫無可奈何)더니, 지난 7월달부터 마음을 돌려 정릉리 어느 절간에 숨어 정양 중이라니, 추풍이 점기(漸起)에 건강한 유정을 맞을 생각을 하면 나도 독자도 함께 기쁘다.



네이버 지식인에서 퍼옴. 이상이 김유정의 건강을 걱정한 글을 쓴 직후 김유정은 지병으로 돌아가셨다.